‘보편적 건강권은 트랜스젠더 해방의 조건이다.’
트랜스젠더의 의료접근성과 건강권, 지역 약사에게 듣다.
‘건강한 몸이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 것일까?’
의료진들과 함께 일하며, ‘환자’라고 불리는 존재들과 마주할 때마다 이상한 괴리감이 찾아옵니다. 제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에게 “~하지 마세요, 그래야 건강해져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마치 질병이 없는 몸, 무균 상태의 완전무결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저 역시 아픈 것은 싫습니다.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질병을 겪고, 늙고, 생애 말기에는 그 형태와 감각이 퀴어하게 변주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사회는 ‘완전무결함’을 기준으로 생명의 기본 권리를 박탈하거나,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몸들을 겨우 숨만 붙어 있게 방치합니다.
사실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인데도 말입니다.
이렇듯 어떤 존재는 보편적인 건강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어떤 존재는 질병과 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 바깥으로 내몰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누구나 ‘정상성의 경계를 드러내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 몸, 내가 잠시 소유한 ‘정상성’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지요.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한 ‘정상성’은 누가 규정하는가?
장애와 질병을 혐오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존 규범을 교란하며 존재하는 몸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바로 그 질문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사회가 설정한 젠더 규범을 흔들고, 몸을 통해 규범의 폭력을 가시화하는 존재들.
매년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이 날을 맞아,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성과 건강권에 대해 지역 약사 ‘두레’님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Q. 트랜스 추모의 날, 이날이 약사님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시나요? 그리고 약사님이 생각하는 보편적 건강권은 어떤 권리일까요?
살면서 불우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내 ‘존재’의 이유만으로 불우한 대접을 받는 것은 억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저도 트랜스 추모의 날에는 마음을 담아 추모를 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건강권은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 권리잖아요. 건강권은 헌법에서 정하는 권리이기도 하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죠. 어떤 특정한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돈의 문제를 낳을 수는 있지만 어떤 존재의 특징이 배제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Q. 민중건강연대를 소개해주세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민중건강연대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라는 운동으로 시작했어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들이 내부에서 갈리게 되었는데요. 지역에서의 사회참여, 사회운동의 의미와 전문직 운동 방향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고자 마음먹은 회원들이 ‘민중건강연대’를 주도하고 있어요.
지금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환경운동이나 소수자 권리 운동과 같이 민중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공공의료에 일차적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회원 8명으로, 약사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회원가입은 약사로만 한정하지는 않아요. 전문직이 아니어도, 약사가 아니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소수 인원이다 보니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지역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후원이나 연대를 하고 있으며 대전기후정의행진이나 대전퀴어문화축제에도 매년 연대하고 있어요.
Q. 트랜스젠더 분들이 약국이나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차별의 경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외적인 부분을 보고 차별적 시선을 보내는 것이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존재를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의료진이나 약사의 태도에서 당사자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죠.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나 그 이외에 배제나 억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료진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측면에서 당사자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높은 병원이나 약국을 일부러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도권에 있는 ‘살림의원’이 성소수자 진료를 많이 받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공부 모임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약국 근처에 위치한 민들레(‘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분들이 조금씩 내원하면서 내부 의료진들도 관련 내용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이런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의료기관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고, 현재 트랜스젠더가 처방받는 약품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의료 비용도 꽤 많이 들어요.
Q. 마지막 답변이 이번 질문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호르몬 치료제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과 같이 호르몬 치료제 처방이나 조제 과정에서도 여러 제도적 한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약사로서 체감하신 구체적인 문제점이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현재 호르몬 치료제로 쓰이는 의약품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드릴게요. ‘오프라벨’이라는 의약품은 본래 만들어진 용도로 쓰는 것이 아닌 그 바깥의 용도로 쓰이는 약품을 뜻해요. 지금 쓰이는 호르몬 치료제는 ‘트랜지션’(일부 트랜스젠더는 몸을 바꾸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받기도 한다. 이를 '의료적 트랜지션'이라고 한다. 호르몬 투약, 성기 제거·재건 수술 등이 해당한다. 출처 : 뉴스앤조이(https://www.newsnjoy.or.kr) 관리에 대한 설명 자체가 공식적으로 부재해요. 이건 곧 공식 의료가 아닌, ‘오프라벨’에 해당하는 의약품인 거예요. 그렇다고 신약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아무튼 제약회사는 시장성의 측면에서 의약품을 개발하니까요. 이렇듯 현재 쓰이는 호르몬 치료제가 ‘오프라벨’이기 때문에 보험 적용도 안 되고, 약의 설명서를 숙지해도 트랜지션에 대한 내용이 없으니, 의사가 개인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거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트랜지션 관리에 대한 정보는 당사자들이 대부분 알고 있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호르몬 치료제를 생산하지 않아요. 거의 수입 의약품인 경우가 많고,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장성이 떨어지는 약이라 재고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Q. 그렇다면 ‘오프라벨’이 아닌 공식 의료로 인정받는다면 어떤 점이 변화할 수 있을까요?
‘오프라벨’의 문제점은 생산자가 그 약품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해도 제약회사에 책임이 없다는거죠. 또한 호르몬 치료제는 대부분 장기적으로 처방을 받잖아요. 그런데 이 ‘오프라벨’은 장기적 처방에 대한 안정성과 관련한 연구 자체가 부재해요. 만약에 ‘오프라벨’이 아닌 공식 의료로 인정받는다면, 즉 의약품 자체에 트랜지션 관련 내용이 포함된다면 보험 적용이 가능할 것이고 약품에 대한 임상실험도 할 수 있을거에요. 안전성 측면에 관한 연구도 가능해지고.
Q. 의료진이나 약사들이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런 교육의 필요성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의료진이나 약사의 교육 과정이나 보수교육 측면에서 이런 지식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지식은 건강권뿐만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존엄을 위한 의료 영역에서의 장치라고 생각해요.
약 봉투에 성별이 출력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약 봉투 자체에 성별표기를 제가 지워버렸어요. 성별 자체를 출력 안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세세한 부분들이 존엄성을 해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Q. 지역의 의료 인프라 격차가 여전히 크죠.
호르몬 치료를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트랜스젠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역 약국이나 의료 현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을 지역 차원에서 지켜내는 데 필요한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의료상의 지식 차원에서는 정식 진료 과목으로 채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료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시민성이 인정되어야겠지요. 시민성으로 인정되면 시민으로서 갖는 학문적인 연구나 제도적 지원이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학문적 연구가 미비하다 보니 여전히 성별 이분법적인 관념으로 의료나 의약품 접근 부분에서 배제되고 있잖아요. 그 예로 의약품은 통계적으로 성별의 분류와 차이에 의해 약이 관리됐어요. 약품의 용도 자체가 성적 차별을 포함하고 있지요.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의약품에는 인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고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본다면 국가적, 시스템적으로 트랜스젠더 건강 매뉴얼이 필요해요. 이를테면 감염병 환자에 대한 매뉴얼은 분명 존재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지역사회 내에서 건강 약자에 속하기 때문에 어느 병원에서든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 매뉴얼 수립과 같은 조치를 해야죠. 지금은 개인이 힘써서 관리하거나 나를 이해해 주는 병원을 알아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니까요.
Q. 민중건강연대에서는 건강권뿐 아니라 ‘질병권’도 이야기하고 있나요?
질병권이 말하는 “질병이 있어도, 아파도, 의존해도, 규범에서 벗어나는 몸이어도 존엄해야 한다”는 관점이 트랜스 해방과는 어떤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고 보시나요?
‘질병권’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질병권이든 건강권이든 존재 자체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존재 자체의 권리란 존재의 차이에 의해서 차별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질병이라는 특수상황이 그 권리 자체를 침해할 수는 없지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의학의 발전 자체가 성별 이분법적으로 발전 및 관리 되어 왔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의료기관 안으로 진입할 때 따르는 여러 가지 차별적 상황들이나 불편한 상황들이 있잖아요. 이런 상황 자체가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소수자 권리나 다양성 문제를 의료가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의료인들의 자기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약사님께서 ‘몸’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해요. 몸은 단순히 치료의 대상일까요, 아니면 돌봄의 관계 안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몸은 존재성 그 자체라고 생각하며 분류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요. 즉 관리적인 측면에서 분류될 수 없고 이론이나 의식은 무언가를 관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몸)을 관리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하며 관리의 대상으로 자연을 분류, 이용하는 시스템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몸은 이론적인 영역이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적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에 분류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요. 돌봄이라는 것도 제도적으로,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닌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방식, 상호성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상황마다 특수하고 특별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Q. 약국 현장에서의 돌봄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당신의 일상에서 돌봄이란 어떤 감각인가요?
돌봄은 매번 새로운 만남이에요. 방금 이야기했듯이 상황마다 특수하고 특별한 상황이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특별한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나태함은 지양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관성에 빠지지 맙시다.(^^)
‘성별 이분법’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제도적 폭력은 돌봄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을까요?
오늘 저는 약사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도권 내의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가난과 장애를 증명해야만 하는 존재들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비단, 의료 영역의 문제, 트랜스젠더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규범은 이렇듯 촘촘하게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회 규범들을 재조직한다면 우리 사회의 돌봄은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요?
약사님이 계속 이야기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도입해서 상상해보아요.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돌봄은, 규범과 제도를 재조직할 때만 가능하다.’
어쩌면 돌봄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정치적·규범적 사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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